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『바리데기』이후로 황석영님의 소설은 두번째이다.
자선전과 비슷한 이유로 성장소설 또한 싫어했었다. 자전적 성격을 띈 채로 자신의 젊은 날의 방황을 미화하거나 교훈이라는 탈을 뒤집어 쓴 훈계조의 글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.
『개밥바라기별』이라고 그런 느낌을 단 한번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. 그도 그럴것이 지겹도록 들어온 '문제의 요즘 젊은 것들'이기 때문이다. 군부독제와 당시 이러저러한 사회문제로 고민하고 행동했던 기성세대들의 이야기들이 나올 때 특히나 더 그랬던 것 같다.
황석영님이 그려낸 전 시대의 젊음은 몇 십년을 지난 지금의 젊음과 다르지 않았다.
다만 그 시대를 거쳐온 세대들이 그들이 정권을 비난하던 목소리는 자유와 민주화의 열망이고 독재와 구시대적 풍취를 지닌 이를 비난하는 문제 있는 세대의 목소리는 뭘 모르는 철부지 아이들과 열등감에 젖은 패자의 술주정으로 치부해왔기 때문에 첫인상이 고까웠을 뿐이었다.
소설 속 인물들은 별나다. 하지만 별난 이들은 현재에도 존재한다. 그들의 삶이 다이나믹 했다고 현재 젊음의 삶이 다이나믹하지 않은것은 아니다. 굴곡없이 곱게 자란 세대라고 매도하지만 젊음의 에너지는 피차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. 또 내면의 굴곡이라는 지극히 주관적 견해가 누구 하나 부족하겠느냔 말이다. 소설 속 인물들이 학교라는 시스템에 대해서 느끼는 바는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똑같이 해봤을 생각이다.
자서전과 성장소설을 읽을 때의 오글거림이란 보편성의 단편을 개성과 우월감으로 포장하는 그 지점에 존재해 왔다.
『개밥바라기별』이 특별했던 이유는 여기서 부터다. 황석영님은 누굴 훈계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. 다만 젊은 시절의 생각과 방황을 유려한 문체로 늘어놓았다. 잘난척도 없고 훈계도 없다. 다만 한가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'젊은 세대에 대한 배려'였다. 소설 속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는 그 시대와 인물의 독특함을 강조한다기보다 젊은 시절의 갈팡질팡하는 생각과 마음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동의를 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.
작가에게 젊은 시절은 방황과 고뇌의 시기였음을 알 수 있었고, 이분이 다른 젊음의 방황과 고뇌를 진정한 웃어른으로서 보듬고자 하는 따뜻한 가슴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.
'개가 밥을 바랄 때 뜨는 별'이라는 뜻의 "개밥바라기별"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훌륭하게 젊음을 표현 하고 있는가?
'황석영'이라는 작가에 대한 이미지는 무릎팍 도사에 나와 이외수가 형님하는, 외모상 잘 매치되지 않는 인맥과 연배를 지닌 작가라는 것이 다였다. 하지만 너무나도 가슴아프게 읽었던『바리데기』와 『개밥바라기별』두 권의 최근 소설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글을 따뜻한 가슴으로 써내려가는 진짜 어른이시라는 강한 인식이 박혔다. 『개밥바라기별』이 네이버에서 연재 될 때 '황석영'이라는 세 글자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던 이유를 이젠 이해할 수 있다.



